
나는 한국의 학원물을 정말 즐겨보는 편이다. 앞서 포스팅했던 학교 시리즈나 드림하이 등과 같은 학원물은 언제 봐도 재밌고, 나의 학창시절을 다시 한 번 떠올리게 해주는 추억의 드라마들이다. 오늘 리뷰할 넷플릭스 드라마 인간수업은 학원물이라는 많은 이들에게 익숙한 학원물이다. 하지만 학원물 속 다루고 있는 소재와 이야기는 기존의 드라마들과 완전히 다르다. 학생 사이의 로맨스와 성장 서사를 중심으로 한 기존 청춘 학원물 드라마와 달리, 이 작품은 청소년 범죄라는 소재를 다루며, 불편한 현실을 마주한다. 공개 당시에는 수위와 소재로 논란이 되었지만, 시간이 지난 지금 다시 바라보면 결국 인간수업은 한국 사회 구조와 교육 시스템의 허점을 드러내고 꼬집는 작품으로 재조명되고 있다.
학원 드라마의 현실성
학원 드라마는 과거부터 현재까지 꾸준히 사랑 받아오고 있는 장르이다. 풋풋한 첫사랑, 친구와의 우정, 시험과 진로에 대한 고민은 누구나 한 번쯤 겪어본 기억이기에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기 쉽다. 하지만 이런 로맨스 중심의 학원물은 어느 순간부터 현실과 동떨어진 판타지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실제 학교 현장은 그리 낭만적이기만 하진 않기 때문이다.
인간수업이 새롭게 와닿았던 이유는 바로 이 부분이다. 이 드라마는 ‘학교’라는 공간을 더 이상 안전한 울타리로 묘사하지 않는다. 오히려 어른 사회의 축소판처럼 잔인하고 냉정한 세계로 그려낸다.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려 보기만 해도, 초등학교 때부터 반에 한두 명씩은 담배를 피우거나, 이미 중고등학생 형누나들과 어울리며 학교 밖 문화를 자연스럽게 접한 아이들이 있었다. 학생 신분으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일탈을 이미 경험한 나의 또래 아이들은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존재였다.
또한 범죄라는 것이 꼭 뉴스에 나올 정도로 거창한 것만이 범죄가 아니다. 같은 반 친구를 교묘하게 괴롭히거나, 특정 아이를 타깃으로 삼아 악의적인 소문을 퍼뜨리고 주변 관계를 무너뜨리는 행위에서 분명한 폭력, 범죄임을 알 수 있다.인간수업은 이런 학교 생활의 일상 속 폭력과 범죄의 씨앗을 숨기지 않고 그대로 드러내며, 그로 인한 결과들과 상황 속 당사자들의 선택들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인지 기존의 청춘 로맨스를 그린 학원물 드라마와 또 다른 학교의 모습을 마주하게 하며 더욱 더 현실감 있게 다가온다.
‘문제없는 학생' 이란
그러다보니 사건사고가 많은 현실의 학교 환경 속에서도 별 탈 없이 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을 보면 자연스럽게 대견하다는 생각이 든다. 흔히 말하는 질 나쁜 아이들과 어울리지 않고, 부모의 걱정 없이 성실하게 학창 시절을 보낸 이들에게는 절로 칭찬이 나온다. 나 또한 나의 부모님께 “싸움 한 번 안 하고, 큰 일탈 없이 졸업한 게 인생에서 제일 잘한 일이고 효도한 것”이라며 농담 섞인 진담을 하기도 할 정도로 평범함을 지키며 학창시절을 끝마친다는게 쉽지 않은 일임을 다시 한 번 느낀다.
하지만 인간수업은 이 지점을 매우 불편하게 건드린다. 과연 사건 사고가 없이 무사히 졸업한 학생은 유독 착해서, 혹은 의지가 강해서 그런 결과를 가질 수 있었을까? 아니면 부모의 관심, 가정환경, 비교적 안정적인 사회적 안전망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일까? 이 드라마는 개인의 도덕성만으로 청소년과 청소년의 선택을 평가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보여준다. 또한 하나의 인상적인 부분은 ‘가난한 아이가 범죄에 빠진다’라는 오래된 공식을 부정하는 시선이다. 요즘 사회에서는 오히려 경제적으로 풍족한 환경에서 자란 학생들이 더 잔인하고 대담한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도 많다. 이른바 금수저라는 배경은 때로는 보호막이 되어, 부모의 권력을 이용해 법과 제도의 허점을 피해가게 만든다.
인간수업은 청소년 범죄를 단순한 환경 탓이나 일탈로 치부하는 시선을 과연 정말 그런지, 의문을 끊임없이 제기하며, 문제의 본질을 눈에 보이는 상황만으로 판단하는 게 아닌 보이지 않는 더 깊은 곳으로 끌고 간다.
청소년 범죄의 본질
청소년 범죄는 흔히 “어리니까 그럴 수 있다”라는 말로 쉽게 정리된다. 아직 미성숙하다는 이유로 성장 과정의 실수 정도로 치부되기 쉽다. 충분히 인지할 수 있는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선택한 일에 대한 책임은 아무에게도 돌아가지 않는다. 인간수업은 이 안일한 관점을 날카롭게 비판한다. 아이들의 선택은 결코 스스로의 경험과 판단에서만 이루어지지 않으며, 그 깊은 이유에는 언제나 어른들의 방관과 무책임, 그리고 허술한 사회 시스템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한국에는 이런 속담이 있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열 명의 어른이 필요하다”라는 말처럼, 한 청소년의 일탈 뒤에는 수많은 어른들의 선택과 무관심이 얽혀 있다. 학교, 가정, 제도, 사회가 각자의 역할을 다하지 못했을 때 그 책임은 고스란히 한 아이가 짊어지게 된다. 인간수업은 바로 이 구조적 문제를 파고들며, 시청자에게 불편하지만 외면할 수 없는 질문을 던진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단순한 자극적인 범죄물이 아니다. 한국 사회가 만들어낸 윤리적 허점과 제도의 빈틈, 그리고 그 속에서 자라난 아이들의 모습은 결국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 작품이 더 의미 있게 다가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인간수업은 단순한 청소년 범죄 드라마가 아니다. 이 작품은 우리가 익숙하게 소비해 온 학원물의 환상을 깨고, 어른 사회와 시스템의 책임을 정면으로 묻는다. 다시 재조명되는 지금, 인간수업은 불편하지만 반드시 마주해야 할 질문을 던지는 한국 드라마로 남아 있으며, 현재의 한국 사회, 더 나아가 앞으로의 한국 사회를 이해하고 준비하는 데 중요한 힌트를 제공하는 문제작이라 할 수 있다.